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송기춘입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우리는 격동의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좌우의 이념대립과 한국전쟁을 겪었습니다. 남북의 군사적 대치와 북의 도발의 위험 속에서 군대의 복무 환경은 좋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제대로 대우되지 못하였고, 전체의 한 부분으로만 취급되었습니다. 국토방위의 사명을 신성한 것이라고 하면서도 그 일을 담당하는 이들을 신성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인권은 군의 특수성을 이유로 무시되기도 하였습니다. 일본의 메이지유신 이후 형성된 일본의 군사제도와 문화가 아직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군은 국가 안의 국가처럼 존재했습니다. 군의 특수성과 보안을 앞세워 외부의 감시와 감독을 배제했고 내부는 철옹성처럼 또는 영주의 성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군사경찰과 검찰도 제대로 된 독립성을 갖지 못하고 지휘관의 지배 아래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군사법원도 사법의 본질적인 요건을 갖지 못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평시에는 군사법원 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단순히 군 사법제도 변경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군의 폐쇄성과 밀행성으로 인하여 인권이 침해될 수 있는 제도를 개혁하자는 것입니다.
군은 목적 수행이 우선시되므로 과정이나 절차의 합법성에 충실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남성 위주의 조직문화가 매우 강하여 여성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조직이 되기 쉽지 않습니다. 명령과 복종이 중시되는 조직에서 성에 대한 그릇된 인식은 성적 괴롭힘이나 성범죄가 많이 발생하고 또 그만큼 은폐될 가능성을 높입니다.
우리 위원회는 군 사망사건의 조사라는 제한된 범위에서 활동하기는 하지만, 군인권 감독기구입니다. 우리 위원회의 활동은 진상규명을 통하여 군에서의 인권 증진을 위한 제도 개선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이 점은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1조에서 명시한 우리 위원회의 설립목적이기도 합니다. 우리 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군 창설 이래 발생한 군 사망사고 가운데 우리 위원회에 진상규명을 위한 진정이 접수된 사건의 진상을 한 점의 의혹도 없이 규명해야 합니다. 활동에 시간상의 제약이 있고 조사에 필요한 인원과 예산에 어려움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사망의 진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합니다. 그것이 군을 국민의 신뢰를 받는 군대로 개혁하게 하고 국방의 의무를 신성하다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길입니다.
군기는 헌법과 법령에 의하여 정당화될 수 있어야 합니다.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강한 군기는 아닙니다. 입헌적 군기야말로 엄정한 군대 기율을 가능하게 하고 자발적 복종에 기초하여 강군을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군복무는 명예로운 것이어야 합니다. 군 복무가 민주주의를 배우고 민주시민으로서 교양을 실천적으로 배우는 학습의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자문위원을 하던 전북향토사단 35사단에는 이런 문구가 적힌 비석이 서 있습니다. “최고의 명문대학 군대”. 이 문구를 보면서 저는 전율하였습니다. 군대에서 이러한 내용을 담을 수만 있다면 군복무가 신성하고 수행할 만한 것이 되며 보람을 가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회 어느 부문보다도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조직이라면, 그곳에 근무하는 것이 보람일 것입니다.
군 복무 중에 친구나 자식이 죽는 것은 가슴 아프고 평생의 한이 되는 일입니다. 그 죽음이 명예롭게 대우되지 못하는 것은 통탄할 일입니다. 더구나 죽음의 원인을 감추고 심지어 비난 받게 만드는 것은 억울한 일입니다. 아픈 상처를 건드려 더 아프게 하는 많은 말은 견기기 힘든 고통입니다. 우리 위원회는 이러한 억울함과 슬픔을 위로하고 눈물을 닦아 드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 위원회는 군 복무 중 돌아가신 모든 유족과 국민들의 아픔과 함께 합니다. 군 복무 중 돌아가신 분들의 유족과 친구들이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우리 위원회는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 구천을 떠도는 망자의 혼을 위로하여 산 사람들이 돌아가신 분들을 잘 보내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진상을 규명하고 유족과 남은 이들의 슬픔을 달래고 아픔을 치유하고자 합니다. 군대가 사회의 어느 부문보다도 인권이 잘 보장되는 곳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군 복무가 모든 이들에게 명예와 자부심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진실을 찾는 사람들이며 위로하고 치유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는 그것이 명예이고 자부심입니다.
우리 위원회가 군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의 진상을 규명하여 관련자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하고,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회복과 인권 증진에 이바지한다는 특별법의 목적을 달성하고 법적으로 부여된 소임을 잘 수행하려면 위원회 구성원 여러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도 힘껏 일하고 정성을 다하여 여러분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송기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