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조사활동보고회 개최

작성일
2020.09.23
조회수
103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조사활동보고회 개최

□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인람, 이하위원회’) 위원회 출범 2주년을 맞이하는 914일 오전 10시 포스트타워 14층 회의실에서‘2020 조사활동보고회를 개최하였다.

         이인람 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한국 전쟁 이후 군인 신분으로 7만 명 이상이 사망하였고 비순직 군사망이 약 39천 명임을 고려할 때 한정된 기한에 유족의 진정접수를 통해서만 재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위원회에 접수된 사건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비순직자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다각도로 노력하겠다고 하였다.

        또한, 의무복무 중 사망한 군인에 대한 차별없는 예우와 군 복무 중 발생한 사고 또는 질병이 주된 원인이 되어 전역 후 사망한 경우, 군 복무 중 발병한 정신장애로 전역 후에도 적응이 어려운 경우, 순직 처리가 늦어짐에 따라 국가보상을 받을 수 없는 경우에도 법과 제도의 개선을 통해 국가책임을 넓힐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탁경국 상임위원은 2년간의 조사활동에 대한 경과보고를 통해, 914 오전 9시를 기준으로 접수된 사건은 1,610건이며, 이 중 450건은 조사가 종결되었고, 703건에 대해서는 본 조사가 진행 중이며. 나머지 접수 건은 조사개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사전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하였다.

      또한 위원회는 조사가 종결된 450건 중 진상규명으로 의결된 223건에 대해서는 국방부, 경찰청, 법무부 등에 순직 재심사, 제도개선, 사망보상금 지급을 통한 구제 요청을 권고하였다.

       보고회에서 발표한 주요 진상규명 사건에는 50-60년대 군의 기록 실수나 사인 은폐에서 비롯된 억울한 군사망, 군 초동 수사과정에서 이루어진 축소와 은폐로 사인이 뒤바뀐 군사망, 구타 및 가혹행위와 과중한 업무 부담으로 인한 자해사망과 군복무에 따른 스트레스로 급성 정신질환이 발병하여 자해한 군사망 등이 포함되었다.

 

  진상규명으로 의결된 주요 사건 보고는 탁경국 상임위원과 이 호, 오병두 비상임위원이 직접 발표하였다.

      ○ 탁경국 상임위원은 군수사의 축소, 은폐, 조작으로 사인이 바뀐 주요 사례를 발표하였다. 황병장(1963년 사망)의 경우, 군기록에는 이유 불상으로 총기자살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위원회 조사결과가설병으로 사격장에 장비 외의 총기를 소지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던 점, 부대에서 2시간 거리인 사격장까지 이동해 자살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은 , 배우자와 자녀 두 명을 둔 가장으로(3, 아들 1) 병장 진급 30일간 정기휴가를 보내고 복귀 3일 만에 자해 사망할 동기를 찾기 어려운 점, 망인 사망당일 총기 사고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부대원 진술등이 밝혀져 망인이 자해사망했다기 보다는 야간 사격훈련장에서 가설병으로 대기 중 오발된 총기에 의해 사고사한 것으로 진상규명하였다.

           유상병(1989년 사망)의 경우 당시 군수사 기관은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분대장의 부대운영에 불만을 품은 부대원 3명이 분대장에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흥분한 망인이 총을 난사하여 분대장과 부대원 1명을 현장 살해하고, 생존한 부대원 1명과 도주하다 절취한 수류탄 2발 중 한발을 부대원에게 던지고 남은 한발로 자폭하였다고 결론지었다. 위원회 조사결과, 당시 헌병대가 총기 감정을 하고도 결과를 고의로 누락시킨 점, 유일한 생존자이며 가해자일 수도 있는 부대원의 진술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고 망인이 타살당했을 수 있는 증거들은 무시한 점, 유족에게 시신도 공개하지 않고 서둘러 매장한 점 등을 근거로 89년 헌병 수사에 축소, 은폐, 부실이 있었음을 진상규명하였다.

           김일병(1974년 사망)의 경우 64년 탈영하여 자녀까지 낳고 결혼생활을 하다 12년이 지난 74년 헌병대에 체포되어 유치장에 수감되었고, 다음날 구토 및 전신경련으로 쓰러져 군통합병원에 응급 후송되어 수술을 받게 되며, 이틀 후 뇌출혈에 따른 뇌부종 및 호흡정지로 사망하게 된다. 당시 담당 군의관은 사망진단서에외인사로 기재했으나 군은 이를 무시하고 전사망보고서와 매화장보고서 등에병사기재하면서 헌병대 수감과정에서 발생한 폭행에 따른 두부손상과 급성경막하 출혈 사실을 은폐하였다. 위원회는 조사를 통해 유족이 제기한 구타에 의한 사망 의혹의 진상을 규명하였다.

       ○ 이 호 비상임위원은 국방부에서 순직을 결정하고도 유족에게 통지하지 않은 사망사건과 변·병사로 잘못 기록하여 마땅히 받아야 할 순직 인정을 받지 못한 사망 사건, 병인사관리규정상 해당 보직에 부적합한 병사를 배치함으로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주요 사례를 발표하였다.

           이이병(1957년 사망)의 경우결핵폐활동성중등도57년 사망 당시 병사로 처리되었다가 97년 국방부의 변·병사기록을 정리하는 재분류 과정에서 순직처리되었음에도 2008년에야 순직 사실을 유족에게 통지하여 오랜 기간 사망보상금을 지급받지 못한 사실이 위원회 조사활동을 통해 밝혀졌고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많음이 확인되어 지급받지 못한 사망보상금 처리를 위한 제도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김이병(1958년 사망)의 경우, 97년 국방부 변·병사자 재심사 과정에서 누락되었다. 망인은 제121후송병원에서활동성 고도폐결핵으로 사망하여 군 복무 중 병사하였음이 확실하나 사인을 알 수 없는 변사로 처리하여 마땅히 받아야 할 순직인정과 사망보상금을 받지 못했음이 확인되었다.

          김훈련병(1961년 사망)의 경우 군입대 한달 만에 훈련 중 열사병으로 심장기능에 장애가 생겨 병사하였음에도 유족에게 사인을 충분히 설명해 주지 않았고 사망 후 6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순직 심사 등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김일병(2003년 사망)의 경우, 사지가 멀쩡해야 세탁병으로 복무할 수 있다는 병인사관리규정이 있음에도 골절 후유증으로 왼팔을 완전히 펼 수 없는 망인을 무거운 세탁물을 다루어야 하는 보직을 부여하였고, 상급자의 폭언과 가혹행위, 무시 등에 상시 노출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이이병(1991년 사망) 또한 말더듬장애있고 암기사항을 힘들어하여 항공기식별요령 등 암기사항이 주요 업무인 방공포병대대에 적합하지 않은 병사였으나 보직이 부여되면서 업무 스트레스가 심했을 뿐 아니라 본부와는 상당히 떨어진 진지에 사병들만 남겨진 시간에 선임병들에게 무시와 가혹행위, 구타 등 괴롭힘을 당하면서 자해사망에 이르게 된 것을 확인하였다. 결국 김일병과 이이병 모두 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병사의 보직 배치에 따른 희생자임이 위원회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오병두 비상임위원은 군 복무와 관련된 스트레스가 발병 원인이 된 정신질환으로 자해사망하거나 구타 및 가혹행위, 개인이 감내할 수 없는 과중한 업무 등이 원인이 되어 자해사망한 사건을 주요 사례로 발표하였다. 또한 6.25참전 용사임에도 기록 오기 등으로 전사자로 인정받지 못했던 사례를 통해 제도개선을 통한 구제조치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홍상병(2009년 사망)의 경우, 입대시 복무부적합검사에서 정상판정을 받았으나 50일 만에 망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정신이상 증세를 보여조현양상장애로 진단되었음에도 동기를 폭행한 것을 이유로 영창에 10일간 구금되어 정신증이 악화되었고 결국 구금에서 풀려난 지 9일 만에 자해사망하였다. 위원회 조사결과 정신증 발병의 주된 원인 이 구타 및 가혹위에 따른 트라우마와 2번의 전출, 사망전 전출된 부대의 복무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야간경계, 수색, 매복)로 밝혀져 정신증의 발현부터 사망에 이르는 과정에 군 복무에 따른 스트레스가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임일병(2014년 사망)의 경우, 군 복무에 따른 스트레스로 정신질환이 발병하여 의병전역을 한 후 보충역 편입이 결정되어 사회복무요원으로 출근해야 하는 첫날 유서를 남기고 한강에 투신하여 사망하였다. 망인의 경우 현역부적합으로 전역된 후 사회복무요원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역 후 사망자로 분류되어 국방부의 순직 심사 대상이 되지 못한다. 위원회는 정신질환으로 전역한 사람이 그 질환이 주된 원인이 되어 자해사망한 경우에도 순직이 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마련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정이병(1953년 사망)의 경우, 군 기록에는 휴가 중 사망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위원회 조사결과, 625전쟁 중 입대하여 훈련 중폐침윤증, 영양실조, 만성위염 빈혈증으로 군병원에서 치료받은 기록이 확인되었고 완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625전쟁에 참전했다. 부대원의 부축을 받아 귀가 조치된 후 6일 만에 사망한 점으로 보아 참전 중 질병 악화로 사망에 이르게 된 전사로 진상규명하였다.

  

   한편, 위원회에 진정된 1,610건은 특별법 제정 당시 목표했던 예상건수를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2006년부터 4년간 활동한 군의문사진상규명회의 접수 건수 600건에 비해서도 2.5배 이상 많은 수치이다. 이에 위원회는 남은 기간 동안 최대한 조사활동을 효율적으로 할 예정이며, 법 개정을 통해 충분한 조사활동이 보장될 수 있도록 국회와 협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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