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 만에 동생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다

작성일
2019.12.0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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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만에 동생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다”


- 국가의 업무처리 과실로 인해 ‘사고사’가 ‘변사’로 처리되어 ‘순직’ 누락
- 진정 접수 기간은 2020년 9월 13일까지 한시적


□ 육군 제12사단에서 복무하던 고 임상병의 가족은 58년전 11월 군으로부터 동생이 훈련받는 중 사망하였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만약 동생이 훈련 중 사고로 인하여 사망하였다면 ‘순직’등의 처분을 받았을텐데 ‘일반사망’으로 되어있는 점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가 출범하자 재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을 냈다.


 ○ 위원회의 조사결과 임상병은 1961년 11월 14일 새벽 순찰 중 후임병이 근무지를 이탈하여 불을 쬐고 있는 것을 보고

    후임병을 나무라면서 목봉으로 2회 때렸고, 이에 후임병은 임상병을 소총 개머리판으로 안면부와 후두부를 수차례 가격하였다.

    이후 임상병은 전신에 심각한 타박상을 입고 병원치료 중 사흘 후인 17일에 사망하였다.

    당시 군은 이 사건을 사망과 직무수행 간에 관련성이 있음에도 ‘사망(변사)’으로 처리하였다.


□ 1958년 1월에 입대한 고 안일병은 일반보급품창고중대부 요원으로 배치받아 근무하던 중 같은 해 8월 21일 경기도 포천에서

   차량사고가 발생하여 공무 중 부상(공상)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 중 간파열로 사망하였다.

   고인은 군 복무중 공무수행과 관련한 ‘사고사’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군은 ‘사망(변사)’으로 처리하였다.


□ 1957년 12월에 입대한 고 김이병은 제1102야전공병단에 복무 중, 이듬해인 1958년 5월 1일‘폐결핵’으로 병원에 입원치료 중

    5월 21일 사망하였다. 당시 조사기록에는 “군 복무 중 활동성 폐결핵으로 진단을 받았고,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는 점을

    근거로 망인의 폐결핵 발병은 군 복무중 발병하였다는 점이 넉넉히 인정된다”라고 기술하고 있음에도 ‘사망(변사)’으로 처리되어 ‘순직’ 심사에서 누락된 것이다.


□ 위 사건들은 지난 11월 25일 위원회의 제17차 정기위원회에서

    ‘진상규명(진정의 내용이 사실로 인정되어 진상이 규명됨)’이 된 사건들이다.

   세 사건 모두 군 복무 중에 발생한 사고 및 질병으로 인한 ‘사고사/병사’에 해당되며 당시의 기준으로도 ‘순직’ 심사대상 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업무처리 상의 과실로 ‘변사(變死, 사인과 사망의 경과를 알지 못하는 경우)’로 처리되었다.

   이로 인해 망인의 유족들은 60여 년간 망인의 사인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억울한 세월을 살아온 것이다.


 ○ 이에 따라 위원회는 위와 같이 당시의 잘못된 관행이나 행정적 과실로 인해 사인이 잘못 기재된 억울한 사건들이

    상당수 있을 것으로 보고 국방부에 ‘변사’로 처리된 사건들에 대한 재조사와 구제책을 요청하였다.


□ 위원회 관계자는 위원회의 진정접수 기간이 2020년 9월 13일로 종료되어 9개월여밖에 남지 않았음을 강조하며,

    묻혀있는 사건들을 새로 발굴하고 진실을 밝히려면 일반 국민과 유족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의지가 필요함을 당부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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